월간 훈노트 Volume 4

나는 내가 병들어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문득 화가 많아지고 말이 뾰족해졌다. 아침 8시 반에 집을 나서면 사무실엔 10시가 넘어서야 도착한다. 저녁 9시 40분에 퇴근 버튼을 누르고 집에 돌아오면 밤 11시가 넘는다.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는 왕복 3시간 10분의 길 위에서, 나는 자주 지쳤다.

잠실역에 도착했는데 버스 3-4대가 몰아서 떠나버리고 다음 버스가 20분 뒤에 오는, 그런 사소한 불운들이 쌓여 나를 무너뜨렸다.

"말 뾰족하게 하지 말아달라"는 아내의 말에도 나는 계속 뾰족했다.

결국 아내를 울렸다.

이건 아니다.

무엇이 나를 이토록 뾰족하게 만들었을까. 10월의 기록을 꺼내 복기하기 시작했다.

왕복 3시간의 무게

하루 14시간이 일과 통근으로 사라진다. 물리적인 시간만 부족한 게 아니었다. 더 좋은 개발자가 되고 싶은 갈증이 나를 조급하게 만들었다.

구현만 하는 개발자가 아니라 설계하고 의사결정하는 개발자가 되고 싶었다. 10개월짜리 독서 로드맵을 세웠지만, 만원 버스와 지하철에서 두꺼운 기술 서적을 펼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요구사항의 진짜 의도를 파악하는 독해력이 부족하고, 효율적인 인터페이스 설계가 어렵다고 느꼈다. 나는 4년 차인데 왜 이렇게 개발을 못하지 라는 자책이 잦아졌다.

그리고 나는 이 모든 걸 해내고 싶었다.

  1. 운동 (체력)
  2. 독서 (지식)
  3. 기술역량 향상 (커리어)
  4. 사이드 프로젝트 (성장)
  5. 가족과의 시간 (삶)

모든 것이 non-negotiable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 어떤 것도 제대로 해내기 버거운 상태였다. 조급함은 나를 좀먹고 있었다.

아빠가 된다는 것

조급함의 중심에는 한 가지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나는 곧 아빠가 된다.

아내는 임신 31주 차에 접어들었고,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어한다. 우리 집 강아지 땅콩이 산책도 주로 아내가 맡아왔는데, 이제는 그것도 버거워 보인다.

평일 저녁, 내가 집에 도착하는 밤 11시 10분은 아내와 유일하게 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다. 아내는 어떻게든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려 그 시간까지 기다렸다가 정류장으로 마중을 나와줬다. 그리고 같이 강아지를 데리고 동네 한 바퀴를 돌고 나서야 우리의 하루는 끝난다.

친정은 대구, 시댁은 수원. 우리가 사는 양주에서는 모두 너무 멀다. 출산 후 지원을 받기 어려운 현실이다. 외벌이인 내가 육아휴직을 선뜻 결정하기도 쉽지 않다.

그리고 태담도 해야한다 하는데... 일단 '찰떡아, 사랑해', '아빠 오늘 출근하는데...' 배에 대고 태담을 해보긴 했다. 그런데 얘가 알아듣긴 하는 걸까 ㅋㅋ. 확실한 건, 아이와 시간을 보내려면 내게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보다 단위 시간당 더 많은 일을 효율적으로 해내야만 한다.

아들이 태어나는데, 이거 어떡하지. 걱정이 앞선다.

유지가 불가능한 삶

나만 힘든 건 아니었나보다. 얼마 전, 아주 친하게 지냈던 동료가 커피 한 잔을 청했다. 그녀는 사내 정치 싸움과 성과 압박으로 많이 지쳐있었다. 잘한다고 생각했던 동료가 눈물을 보일 정도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니, 참 다들 열심히 사는데 또 그만큼 힘들구나 싶었다.

더 아찔한 건 우리 팀 남편들의 상황이었다. 주중 매일 12시, 1시 퇴근. 주말에도 이어지는 작업. 집에 쓸쓸히 남겨진 아내들. 우리 팀 남편들은 다들 아내와 이혼 위기라는 농담 아닌 농담을 한다.

나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일과 가정의 균형. 출산 후엔 지금보다 훨씬 더 바빠질 텐데, 나는 아내를 더 잘 챙겨야 했다.

지금 이 방식은 유지가 불가능한 삶이다.

불행할 이유가 없었다

여기까지 10월의 기록을 복기하고 나니, 내가 왜 뾰족해졌는지 그 이유가 선명하게 보였다.

왕복 3시간의 물리적 한계, 더 잘하고 싶은 조급함, 아빠가 된다는 무게감, 그리고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조직의 문화까지. 이 모든 것이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

아내를 울리고 만 그날 밤, 이 문제의 목록들을 바라보다 문득 다른 쪽을 보기로 했다.

나는 정말 불행한가?

사실 나는 불행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공기 좋고 물 맑은 양주의 널찍한 집에서 사랑하는 아내와 귀여운 강아지와 함께 살고 있다. 회사도 잘 다니고 있다. 그리고 곧 첫 아이가 태어난다.

내가 가진 것들을 하나하나 다시 돌아봤다. 4년 차 개발자로서 멘토링으로 사람들을 돕는 일. 기술적으로 성장하고 싶은 열망. 운동 계획과 사이드 프로젝트. 나는 이 모든 것을 포기한 게 아니다.

다만, 목표를 세우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목표를 세움으로써 내가 삶을 대하는 방향을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잊고 있었다.

나만의 군자유삼락(君子有三樂)

맹자는 군자유삼락을 말했다.

군자에게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다. 천하를 다스리는 권세와는 무관하다.

부모가 모두 살아 계시고, 형제가 무사한 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며,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고, 사람을 대함에 부끄럽지 않은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며, 천하의 인재를 얻어 가르치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

천하를 다스리는 권세와는 무관한 세 가지 즐거움. 10월의 마지막 날, 이 말을 나에게 맞게 다시 정리해봤다.

첫 번째 즐거움: 가족이 함께 건강하다. 부모님도, 누나도 모두 잘 지내신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꾸렸고, 귀여운 강아지가 곁에 있다. 곧 태어날 찰떡이와 함께할 새로운 가족의 풍경을 그리는 것. 이보다 더 큰 즐거움이 있을까.

두 번째 즐거움: 선의로 사람을 대하니 부끄럽지 않다. 나는 기본적으로 선의를 담아 사람들을 대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하늘을 우러러, 또 사람을 대함에 부끄럽지 않으려 노력한다. 멘토링으로 다른 개발자들을 돕고, 선의로 동료들을 대하며 정직하게 일한다. 이 마음가짐이 나를 단단하게 만든다.

세 번째 즐거움: 나는 성장하고, 또 성장시킬 수 있다. 원문의 세 번째 즐거움은 천하의 인재를 얻어 가르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성장과 양육으로 다시 읽었다. 지금의 부족함과 시간의 압박은 나아지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 나는 더 나은 개발자가 되기 위해, 더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나아가는 방향 자체가 즐거움이다.

멘티들의 성장을 돕는 즐거움, 그리고 곧 태어날 찰떡이를 한 명의 멋진 사람으로 키워나갈 즐거움. 이 모든 것이 나의 세 번째 즐거움이다.

10월은 나를 병들게 했던 한 달이었지만, 동시에 내가 가진 것들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 달이기도 했다. 조급함은 여전하고, 통근 시간도 그대로고, 할 일은 산더미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내가 불행했던 이유는 시간이 부족해서도, 능력이 부족해서도 아니었다. 내가 이미 가진 즐거움을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행복하다.